그리고 나서 나는 7분 동안 30여가지 질문에 매우 공손히 대답하였다. 주관식도 아닌 보기가 5개나 되는 객관식이었다. 질문마다 보기가 달라 마흔살쯤 되어보이는 여자의 이야기에 신경을 집중시켜야만 했다. 그녀는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여론조사를 담당하고 있었고 내 신상에 관해 간단한 정보를 요구했지만 정확히 7분이 소요될 거라는 말은 당연히 발설하지 않았다.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내가 답해야할 질문의 내용이었다. 주류광고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든가 문화와 스폰서의 관계를 평가하라는 질문에 대학원입시 면접 테스트가 떠올랐다. 여론조사를 누가 설계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각설하고 여자가 던진 질문에 거침없이 보기를 선택하던 나는 조금씩 진지해져갔고 솔직히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한 순간 나는 멈칫한다. 여자는 물었다. 자폐증이나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일반인과 같은 존재인가요? 내 아이를 그들에게 맡길 수 있습니까? 나는 말한다. 누구나 자폐증에 걸릴 수 있다. 그들과 나는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하지만...내 아이를 그들 곁에 두는 것은 힘들 것 같다.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나는 위선자인가?
서번트 신드롬 Savant Syndrome은 자폐증이나 발달장애 등의 뇌기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와 대조되는 천재성을 동시에 갖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베리 레빈슨 감독의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먼이 분한 레이먼드는 자폐증 환자지만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암기력과 계산능력을 보여준다. 특히 그들은 좌뇌가 파괴되어 대부분의 사고를 우뇌에 의지하게 되고 따라서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영역에서 엄청난 재능을 보이게 된다. 그런데 서번트에 대한 정의는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리안 핑아라는 소년의 작품이다. 심한 자폐증과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그는 3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전문가들은 그의 색채감각을 매우 높이 평가하며 그에게 서번트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의 눈에 들어온 모든 장면은 곧 그의 그림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서번트를 올바로 설명하는 것은 자폐증 환자이지만 천재인 사람들이 아니라, 천재이지만 단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 둘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번트를 포함한 자폐증 환자들을 일반인과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들이 활용하는 뇌의 메커니즘은 일반인과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선택적 능력과 극단적인 노력을 통해 천재성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분류하기보다는 우리 가운데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한편 서번트의 천재적인 능력을 장애에 대한 반대급부나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장애는 극복할 수 없다. 다만 인정하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똑같은 과정과 결과를 요구하는 것은 최악의 폭력이다. 학술적인 내용은 인정하더라도 감각적 육체적으로 그들과 일반인 사이의 차이를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차이가 먼저인지 아니면 통섭이 먼저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누구나 서번트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신의 축복 혹은 형벌이 아닌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천재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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