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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routinelog 2010/02/01 13:00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손석희의 고백 가운데)

  1. 아침에 겨우 눈을 뜨니 시계바늘은 이미 엉뚱한 곳에 도착해 있다. 시각능력이 활성화되고 분노게이지가 급격히 상승한다. 잠시 잊고 있던 동물적 감각이 육체를 흔들어 깨우면 생존욕구로부터 비롯된 비명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 퍼진다. 평소 침대에서 화장실 문앞까지 적어도 10분쯤은 걸리던 먼 길을 단 2초 만에 주파하고 탁월한 멀티태스킹 능력으로 양치질과 머리감기를 동시에 완성해낸다. 늦으면 죽는다는 뚜렷한 명제 아래, 식탁 위의 아침식사는 최후의 만찬과 같은 엄청난 사치일 뿐이며 어제 신었던 구멍 난 양말쯤은 얼마든지 재활용 가능한 친환경적 아이템으로 등극한다. 칼루이스마저 울고 갈 순발력과 기럭지로 계단 네칸 쯤은 한걸음에 뛰어넘는 신공을 발휘하다보면 마치 시간을 달리는 소년이 된 것 같다. 데드라인에 맞춰 목적지에 입성하면 살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한 기운이 충만하다. 흰셔츠에 얼룩진 커피자국을 발견하지만 빈티지스러운 뉴요커를 떠올리며 쿨하게 무시하는 오픈마인드 앞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2. 나는 여전히 내가 남들보다 한참이나 뒤에서 혼자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삶의 주인이 되겠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항상 제자리를 멤돌며 작은 우주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실제로 내가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루저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 늦는 다고 해서 그것이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우리의 인생이라는 건 혹독한 노동을 강요하는 달리기 시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인생은 정말 길 위에서 만난 우연한 여행이 아니던가. 일상의 위태로운 지각이 5초 짜리 영상으로 편집되는 것처럼 지금의 고민과 외로운 공간은 한 편의 여행이 되어 시간의 빈 곳을 채워줄 것이다. 조금 늦는다 해도 절실함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